top of page

센티언츠들이 후퇴했다. 정신 없었던 첫 전투가 끝나자 내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쓰러져있는 센티언츠와 오로킨 병사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서서 그 어느 한 곳도 다치지 않은 텐노, 그리고 그들을 두려워하는 오로킨 장교들. 트리니티는 내 어깨를 붙잡으며 돌아가자고 말했다. 첫 실전이 끝나자 라이노는 나에게 술 한잔 걸치자고 제안했다. 나는 무력감과 불쾌함을 떨쳐내기 위해 그의 제안을 승낙했다. 그와 함께 술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트리니티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내가 보았던 그 어떤 얼굴보다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나는 찝찝함을 느꼈다. 이런 감각들을 떨쳐내기 위해 나는 술집으로 가는 발을 빨리 했다.

 

여러번 전투를 치르고 나서 죽음에 무감각해진 나를 보며 헛구역질 났다. 거울에 비친 그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마 트리니티는 내가 이렇게 되리라고 꿰뚫어본 것은 아니었을까. 그 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어느 소녀가 울부짖으며 엄마와 아빠를 찾는 동안 그녀 앞에 있던 두 남녀는 이미 괴물로 변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자는 온 힘을 다해 소녀 앞으로 기어가 얼굴을 어루만지며 간신히 한마디를 했다.

 

“도..망쳐..”

그러면서 소녀를 난간 밑으로 밀어버렸다. 소녀는 떨어지며 다리를 다쳤지만 여자가 했던 말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그들을 도와줄 사람을 찾기 위해 가능한 멀리 도망쳤다. 하지만 괴물로 변한 그들이 더 빨랐던 것인가, 다리를 다친 탓에 그녀가 빨리 도망칠 수 없었던 것인가는 알 수 없었지만 한가지 알 수 있었던 것은 괴물로 변한 그들이 더 이상 소녀를 알아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죽었다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천장을 부수고 뿔이 하나 달린 투구를 쓴 남자가 나타났다. 괴물로 변한 둘을 단숨에 베어버리고 소녀에게 돌아갔다.

 

“다친 곳은 없나?”

어딘가 어색하지만 걱정하는 말투가 드러나는 남자의 목소리는 소녀를 안심시키기에는 충분했고 안도와 슬픔이 교차하면서 소녀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녀는 그 이후 남자를 따라가 그들의 일원이 되었고, 그녀는 트리니티라는 이름을 갖고 이전에 인간일 때의 이름은 영원히 마음 속에 묻어두었다.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굉장히 기묘한 꿈이었다. 트리니티의 과거를 엿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은 그녀의 과거일까 아니면 내가 만들어 낸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까. 모처럼 휴일이다. 나는 트리니티에게 찾아가 차를 마시며 그녀에게 그날 꾸었던 꿈에 대해 모두 말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눈에는 생기가 사라져갔고, 마지막에는 실소를 했다.

 

“그거 일부만 사실이고 일부는 전부 림보 당신의 상상이에요.”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괜찮으면 물어봐도 괜찮은가?”

“일단 저는 그 뿔 달린 투구를 쓴 남성에게 구해진 것은 맞아요. 하지만 괴물은 없었어요.”

“그러면 자네는 한번도 인페스티드 같은 존재에게 어렸을 적에 쫓겨본 기억이 없다는 것인가?”

“그런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다면 아마 저는 지금도 제정신이 아닐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일이 없었기에 이렇게 멀쩡히 있겠죠.”

나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지만 트리니티에게서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에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