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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잡아 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가는 이도 있고, 있는 힘을 다해 반항하는 이도 있다. 반항을 하는 경우, 그들은 폭행이나 도구를 망설임 없이 썼다. 주로 전기충격을 주는 방법을 썼는데, 고통에 쓰러져 몸부림치는 동안 그들은 우리를 끌어다 팔다리에 족쇄를 채운다. 그리고 그 족쇄는 굵고 튼튼한 선이 연결되어있고, 곧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그 선은 팽팽하게 잡아당겨져 허공에 매달리게 된다. 그러면 끌려나간 둘이 마주보고 매달리게 된다.
사선으로 위를 향해 당겨진 팔에 온몸의 무게가 모두 실리게 되는데, 간혹 실험 중 몸부림치고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버티다 못해 어깨가 뒤틀려 쓸 수 없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깨의 고통을 느끼는 것은 잠시뿐이고, 곧 시작되는 실험에 우리는 어깨 따위는 신경을 쓸 수 없게 된다.
그들이 우리를 가지고 했던 실험은 다양했다. 사실, 처음엔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한 고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무언가를 알아낸다는 것은 맞았지만, 고문을 통해 알아내려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든 그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고, 묵묵히 노트에 무언가를 적거나, 무언가를 작동시키거나, 우리를 가만히 관찰할 뿐이었다. 곧, 우리는 그저 실험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에게 우리는 그저 실험실에 널린 도구들처럼 의지가 없는 무생물이나 다를 것이 없는 존재였다. 그들은 말 그대로 우리의 온 몸을 열어 구석구석 관찰하고, 실험했다. 그들은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조치를 했다. 감각이 모두 살아있는 채로, 혹은 더 예민해지도록 약물을 맞은 후, 그들은 열린 배와 가슴 안을 들여다 보기도, 팔다리를 갈라 드러난 속살과 조직, 뼈들을 가만히 관찰하기도 했다. 가끔은 알 수 없는 약물을 발라놓고 살이 녹는 모습을 보며 노트에 무언가를 적기도 했고, 기계를 사용해 짓누르거나, 잡아당기며 한계를 측정하기도 했다.
실험을 당했던 기간 동안 같이 매달린 상대방이 죽는 장면을 봐야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될 때도 있었고, 언제 기절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 눈을 뜨고, 방을 둘러보고 돌아오지 못한 것을 확인하고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때도 있었다. 물론, 나는 기절하는 편이 나았다.
귀를 찢을 듯이 이어지던 비명이 갑자기 뚝 끊기고, 팽팽히 젖혀졌던 머리가 축 늘어진다. 실험체와 연결된 기계에서 삑, 삑, 하고 일정하게 울리던 소리가 삐이이- 하며 이상을 알리면 지켜보던 그들은 잠시 실험을 멈추고 다시 깨어나도록 만드는데 집중한다. 여기서 다시 살아나는데 성공하면 잠시 멈추었다가 실험을 계속했다. 깨어나지 못하면 일단 실험은 중지되고, 그 몸은 족쇄에서 풀려난다. 풀려난 몸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을 본다는 것은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다. 왜냐하면, 그들은 둘 중 하나의 목숨이 끊어졌을 경우, 그들은 그 날의 실험을 그만두고 방으로 되돌려 보냈는데, 그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아닌 이가 죽었을 때, 오늘은 자신이 죽는 게 아니라는 안도감을 가장 먼저 느끼게 되었다. 남의 죽음에 안도를 느낀다는 것,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믿을 수 없었다.
다같이 방에 있는 동안 딱히 많은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만 돌아온 날은 유난히 더 어두운 공기가 돌았다. 혼자 돌아왔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그날 방 구석에 웅크린 어깨가 떨리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었다. 우리 모두 그 과정을 겪기 때문에, 모두들 그 모습을 외면했다.
또한, 그들은 우리가 반항할 때 마다 마치 관처럼 생긴 기계에 가둬놓곤 했다. 그 기계는 철로 된, 우리의 모양을 본뜬 그릇 부분에 붉고 투명한 유리 같은 재질로 된 뚜껑이 달려있었는데, 그 안에선 팔 하나 움직일 수 없었고, 가만히 서있는 것 말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크기였다. 거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눈앞에서 진행되는 실험을 보거나, 최대한 다른 생각에 집중해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눈을 뜨면 실험하는 모습은 너무나 잘 보였고, 바깥 소리도 정말 깨끗하게 잘 들렸다.
옴짝달싹 못하는 곳에 가만히 갇혀 오랜 시간을 있다 보면 서서히 근육이 뒤틀리는 느낌이 든다. 불편한 느낌에서 시작되어 점점 견디기 힘든 답답함이 찾아온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직접 겪어봤기 때문에 더욱 더 날카롭게 귀를 파고드는 비명소리와 눈에 박히는 참지 못할 고통을 보고 있으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거나 여기 있는 동안은 저 곳에 묶이지 않아도 되니까.
투명한 벽 너머로 보이는 광경은 붉다. 우리의 피가 붉은빛이라는걸 알기 때문에, 마치 온 세상이 피에 물든 것처럼 보인다. 오랜 시간 있다 보면 원래 세상이 그랬던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피투성이 세상. 실험실에 흐르는 피 위에 세워진 세상.
기계 안엔 항상 둔탁한 박동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일정한 간격으로 음량이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하는데, 듣고 있으면 머리 속에서 뇌가 같이 숨쉬는 느낌이 들면서, 마치 한 발짝 뒤에서 세상을 보는 것처럼, 맑은 정신으로 있기 힘들었다. 하지만 잠드는 것도 당연히 불가능했다. 그 박동소리가 마치 북소리처럼 우리를 깨어있게 했고, 그마저도 안되면 갑자기 머리를 꿰뚫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정신을 깨우기도 했다. 결국 실험 내내 도망갈 곳 없이 갇혀있어야 하는 형벌이었다.
풀려나는 것은 실험이 끝나고 정리가 모두 끝난 후였다. 그렇기 때문에 실험체가 되었을 때보다 더 확실하게 죄책감과 자기혐오를 느낄 수 있다. 둘 중 하나가 생명을 잃어버리면 지금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는 사실을, 고통에 흐려지지 않은 정신으로 더 확실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하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길어지고 곧 실험이 끝날 시간이 오고 있다는 것을 몸이 상기할 때면, 어떻게든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우리 중에 이 형벌을 자주 받은, 그들 기준에선 난폭하다고 할만한 이가 있었는데, 처음엔 그저 그들 기준에만 난폭한 실험체였지만, 횟수가 거듭할수록 우리에게도 폭력적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신체 영역에 들어가면 거칠게 밀치다가, 심지어 때리기까지 했다. 나중에는 아무 일도 없는데 갑자기 달려들어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크게 소란스럽지 않은 경우 그냥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처럼 가만히 있었지만, 심하다 싶을 땐 두어명이 붙어 팔이나 어깨를 잡아 말리기도 했다. 한번은 말 그대로 구타를 시작한 것을 보고 말리려고 어깨를 붙든 적이 있는데, 그는 곧 화살을 나에게로 돌려 주먹으로 나를 때리곤, 그에 대비하지 못해 쓰러진 나를 붙들고 목을 꺾으려 했다.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뒤틀려 목뼈와 근육이 내는 비명을 느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습게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고통 속에서 실험을 당하는 동안 이대로 기절해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