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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이잉-
희미하던 소리가 점점 커졌다.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 보이기 시작했다. 날갯짓처럼 작던 소리가 점점 선명히 들리기 시작했다. 주변이 선명해 질수록 무언가가 갑갑했다
.
꽤 선명해진 시야에 무엇인가 불쑥 들어왔다. 갑자기 시야에 강한 파란빛이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앞을 가려보려 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손뿐 아니라 다른 곳도.
불빛 너머로 웅성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고개를 돌리려 했으나 그것조차 할 수 없었다. 팔다리에도 힘을 주어 보았지만 그 어느 곳도 움직이지 않았다. 곧 주변에 바쁘게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렸다. 몇몇 발소리가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졌다.
눈 앞에 선 그들은 모두 똑같은 복장을 하고, 모두 똑같이 네모난 머리를 하고, 모두 똑같이 파랗고 옆으로 가느다란 불빛을 빛내고 있었다.
가장 앞에 선, 혼자 다른 옷을 입고 있는, 아마도 우두머리로 보이는 존재가 조금씩 다가오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텐노, 하고 말을 걸었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물어보려 했으나, 나의 목소리에선 오랫동안 쓰이지 않던 기계를 억지로 돌리는 것처럼 긁히는 소리가 났고, 내 귀에 들리는 매우 어색했다. 작은 소리였지만 그는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곧 뒤돌아서 무언가 소리쳤다. 뒤에 서있던 그것들은 부산히 움직이며 뿔뿔이 흩어졌고, 내 앞에 서있던 그는 다시 뒤돌아, 나를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을 시작했다.
나에게 말을 건넸던 그는 본인을 소장이라고 소개했다. 이름은 어차피 부를 일이 없을 테니 알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이 훌륭한 코퍼스의 연구소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우연히 나를 발견했고, 내가 그들과 다른 생명체이며, 그래서 나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고 말했다.
그 날 그들은 알 수 없는 측정과 테스트를 계속 했다. 나는 손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그들은 나를 마음대로 이리저리 돌리고, 만져대고, 측정하고, 묵묵히 관찰했다. 마치 물건이 된 느낌이었다. 몇 번 소리를 내어 반항하려 했지만 그저 잠시 나를 쳐다봤다 하던 일을 계속 할 뿐, 그 외의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렸는지 알 순 없었지만, 어느 순간 주위를 바삐 움직이던 연구원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소장과 양 옆의 두 명이 남았다. 한 명의 손엔 고리 같은 것이 들려있었다. 소장은 그것을 건네 받아 나의 눈 앞에 흔들어 보였다.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던 컨트롤러를 엄지 손가락으로 눌렀다. 고리의 가운데의 빈 공간에 치직, 하고 반짝이는 불빛이 흘렀다. 그리고 곧 다른 버튼을 누르니 철컥, 하며 고리가 갈라졌다. 그리고 그가 그 고리를 나의 목에 채우는 순간,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제대로 고리가 잠겼는지 확인한 그는 자신의 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몇 발짝 뒤로 물러 뒷짐을 지고 섰다. 곧 팔다리에 잠겨있던 구속구가 풀렸다. 계속 똑같은 자세로 장시간 꼼짝없이 묶여있던 터라 내 몸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움직여보려 몸에 힘을 넣는 것이 참 생소한 느낌이었다.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나는 확실하게 들었다. 차가운 느낌의 소리였다. 나는 지금 벗어나지 못하면 앞으로 힘들 것이라는 것을 느꼈고, 어쨌든 도망쳐보려고 일어나 달리려 했다. 소장은 놀라는 기색도 없이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곧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지며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엄청난 고통이 몸을 꿰뚫었다.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소장이 나를 내려다 보는 것을 보았다. 고통은 사라졌지만 바로 움직일 순 없었다. 그는 나를 향해 컨트롤러를 흔들어 보였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할 시간은 필요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일어나려 했지만 똑같은 고통이 다시 나를 덮쳤다. 다시 들리는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다시 눈을 뜬 곳은 어느 방이었다. 그 방은 벽이 높고, 조명은 없었지만 하늘을 향해 뚫린 창문이 있었다. 창문을 통해 어두운 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빛이 들어왔다. 그것이 방을 밝혀주는 빛의 전부였다.
희미하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방에서 새로운 실험이 시작될까, 갑자기 덮쳐온 두려움에 주변을 빠르게 둘러봤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그림자들이 보였다. 코퍼스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내가 그들을 경계하며 관찰한 것처럼 그들도 나를 보았지만, 곧 서로 다를 바 없는 처지인 것을 알았고, 각자 자신의 세계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바깥 세상은 어떨지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있는 방엔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몸에 배일 정도로 반복되는 일정만이 시간의 흐름을 알려줄 뿐이었다.
그 방에서도 우리는 시간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얼마만큼의 시간인지 모르지만 꽤 긴 시간이 흐르고, 그들이 들어와 두 명씩 끌고 나갔다. 끌려나가는 모습 뒤로 열린 문이 마음대로 닫히며 쾅, 하는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리고 정적이 흐른다. 곧 희미한 소리가 들린다. 헐떡이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 격렬하게 달그락거리는 소리, 낮게 신음하는 소리, 그리고 그 사이에 섞여 전류가 튀는 소리,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등 여러 소리가 들렸다. 문 너머를 볼 순 없지만, 어떤 장면이 벌어지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모두들 한번쯤은 겪어보게 되기 때문이다.
한참을 곧 잠잠해진다. 조금 기다리면 발자국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방 안으로 무언가를 던져 넣는다. 바닥에 널브러진 것은 실험체로 끌려갔던 이들이다. 가끔은 한 명만 돌아올 때도 있다. 돌아오지 못한 한 명은, 이후로 영영 볼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이 방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우리는 충분히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말을 나누지 않았다. 그들이 실험대상을 어떻게 고르는지 당연히 몰랐고, 우리 중의 누군가가 방으로 돌아오지 못할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할 수 있는 건 끌려나가며 공포에 떠는 그들에게 안타까운 마음과, 내가 아니라는 안도감, 그리고 그 안도감이 주는 죄책감 속에 가라앉아 그들이 돌아올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것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