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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팔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온몸에 휘감기는 살기였다. 끈끈하고 무겁게 달라붙어, 마치 거대한 미지생물체에게 잡아 먹히길 기다리는 작은 생물체가 된 것 같았다. 살기는 커녕 감정 하나 느껴지지 않는 그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마치 거대한 벽과 같았다. 아무리 두들겨도 흠 하나 가지 않을, 높이도 너비도 알 수 없는, 싸우는 것이 불가능한 거대한 벽. 실제로도 현재 내가 그들을 이길 수 있을 확률은 희박했다.


하지만, 지금 나를 죽이려는 이 손은 그 벽이 아니었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으면서, 먼저 주먹을 날렸단 이유만으로 여기서 내가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여기만큼은 아니라는, 지금 이 상황만큼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의식이 집중됐다. 몸 속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솟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점점 시야가 뒤틀리며 붉게 변했다. 점점 짙은 붉은빛이 시야를 뒤덮었다. 

다시 세상이 원래대로 보일 때쯤엔, 나는 내 목을 조르던 이의 몸에 올라타 주먹을 들고 있었고, 그 주먹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그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문 앞에 멈춰 서서 잠시 우리의 모습을 지켜봤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그들의 귀중한 실험체에 상해를 입힌 죄로 처벌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서워서, 몸이 굳어버렸다.


뒤늦게 내가 무엇을 저질렀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자각하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결국 나는 그들을, 그들이 나에게 내릴 처벌을 두려워하면서 반항을 포기하고, 대신 같은 처지에 놓인 이에게는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나는 그들을 내 위의 존재로 여긴 것이다.

 

그들은 별다른 말 없이 다가와 나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 옆으로 비켜서라는 제스처를 취했고, 얌전히 비켜난 나에겐 아무런 신경을 쓰지도 않고 내 밑에 깔려있던 몸을 끌고 나갔다. 끌려나가는 동안 그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바닥에 끌려나가며 핏자국이 그려졌다. 한 명, 소장을 제외하고 모두 나갔다. 잔뜩 움츠리고 긴장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온 소장은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나는 그 손이 곧 나의 얼굴을 향해 날아올 거란 생각에 움찔, 하고 더욱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그 손은 천천히 내려와 반 밖에 남지 않은 나의 얼굴에 닿았다. 그리고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나는 놀랐다. 그가 나에게 처벌을 내리지 않은 것과, 그가 나에게 고통이 아닌 감각을 느끼게 한 것에. 곧 그는 손을 떼고 뒤돌아 성큼성큼 걸어나갔고, 열려있던 문도 다시 굳게 닫혔다.

 

결국 그들이 끌고 간 그 몸을 다시 보는 일은 없었다. 또한, 나는 꽤 긴 시간 실험에 끌려가지 않았다. 끔찍했다. 몸은 편했지만, 나는 구석에서 몸을 말고 계속 마음속으로 날 학대할 뿐이었다. 마치 누군가 소근거리며 내가 그들처럼 이 방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존재를 만들었다며, 끊임없이 날 매도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들은 말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실험을 당하고 싶었다. 다시 그 고통을 느끼면 이 혐오스러움을 잊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다시 실험에 끌려가자, 휴식을 맛본 몸이 그 전까지 익숙했던 고통을 더욱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방의 분위기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 사건에서 그들이 보여준 태도와 실제로 내가 한동안 실험에 끌려가지 않은 것을 본 이들은, 서로를, 특히 나를 보고 흠칫 놀라며 피하기 시작했다. 특히, 누군가 처벌을 받고 돌아오면 모두 벽에 바짝 붙어 최대한 떨어져 있으려고 했다. 사실, 그렇게 무서워하며 떨어져 있으려 뒷걸음질 치는 것은 아직 기계의 작용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신에 사냥감 무리에 접근한 포식자와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여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오곤 했다. 뒤로 슬금슬금 피하는 무리들을 향해 괴성을 지르거나, 위협적인 동작을 보이거나, 덤벼드는 경우도 있었다. 종종 몸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그리고 더 이상 몸싸움을 말리려 끼어드는 이도 없어졌다.

 

분명 감시 시스템이 없을 리가 없는데, 싸움이 일어나 소란스러운 동안 그들이 나타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들은 항상 싸움이 끝난 뒤, 누군가 쓰러졌을 때 나타났다. 쓰러진 몸을 어딘가로 가져가고, 소장은 마치 칭찬하듯 어깨를 두드리고 나간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는 며칠간 실험에서 제외된다. 그렇게 점점 실험에서 제외되는 이와 계속 실험에 끌려가는 이들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연대나 관계 같은걸 신경 쓰진 않았지만, 점점 더 확실하게 먼저 공격하고, 싸움을 많이 하고, 살아남은 횟수가 많은 이들만 남기 시작했다. 실험이 끝나면 그나마 쉬던 공간이었던 이 방에서 조차 긴장을 풀지 못하고 서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많이 싸움에서 이긴 것은 나였다. 최초의 승자라는 것 때문인지 많은 도전을 받았다. 그때 남의 몸에서 피를 내는 것을 좋아한 건 아니지만, 그 때 느꼈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날 계속 살아남게 했다. 이미 살기 위해 피를 냈고, 거기에 피가 더 흐른다고 해서 더 나빠질 것은 없지 않은가. 이미 저질러진 일이다. 나는 쓰러진 몸들로 이루어진 계단을 밟고 올라 살아남은 것이고, 이미 그 첫 계단은 아주 먼 옛날처럼 기억도 나지 않았다. 어쩌면 기억하길 거부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안 그래도 몇 없던 우리는 곧 나를 포함한 세 명으로 줄어들었다. 방에 있는 동안 항상 우리는 벽의 꼭지점에 쭈그리고 앉아 서로를 견제하며 지냈다. 그쯤 들어선 받는 실험도 칼을 대고 약품을 끼얹는 것이 아닌, 내가 쓰는 언어로 집요하게 무언가를 묻거나, 음파를 들려주며 반응을 관찰하거나, 심지어 우리에게 그들의 언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이가 방에 들어왔다. 그들과 같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머리가 네모난 모양이 아닌 동그랗고, 거기에 달린 것도 가로로 긴 파란 슬릿이 아니었다. 곧, 우리 셋을 모이게 하곤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자신은 그들과 같은 연구원이었지만, 자신은 이 실험을 하는 것을 반대하다가 결국 처벌의 의미로 여기에 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곤, 어느새 잊고 있던 머리 위 창문에 펼쳐진 하늘을 가리키며, 우리 셋이 이 끔찍한 곳을 벗어나 원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고 했다. 오랜만에 올려다 본 하늘은 아름다웠고, 그래서인지 막연하게 살고 싶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곳에서 벗어나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곧 그는 이 실험실의 목적과 왜 하필 우리들이어야 했는지 간략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텐노라는 종족의 탄생과 텐노의 능력, 그리고 온전히 그들의 것으로 가공될 새로운 텐노. 그것을 위해 우리들은 그렇게 고통 속에서 살아남기를 강요당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실험이 완성되지 못하도록 여기서 도망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요즘 자유롭게 활동하는 텐노들이 우리처럼 붙잡힌 텐노들을 구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언젠가는 이곳도 찾아내어 우리를 꺼내줄 것이니, 그때까지 버티라고 했다.

 

사실 그때까지 다른 두 명이 나와 같은 텐노라는 것을, 아니, 사실은 내가 텐노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살아왔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화라고 할 만한 교류가 없었고, 무언가 말한다고 해도 서로 싸우면서 내뱉은 짧고 혐오감이 담긴, 예를 들어 괴물, 쓰레기, 살인자, 같은 알아듣지 못해도 어감만으로도 알 수 없는 말만 했으니. 그마저도 대부분 실험의 후유증으로 발음이 새거나 부정확해 알아들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나머지 그들이 모두 텐노가 맞는지, 사실 알 수 없었다. 결국 텐노인 것을 확인한 것은 셋뿐이다. 우리가 구분할 수 있는 건 결국 우리에게 실험을 한 그들뿐이고, 어차피 다들 계속된 실험으로 점점 다른 생김새를 갖게 되었으니.

 

어쨌거나 우리는 우리 외의 다른 텐노를 만나게 되는 날을 고대하며 지냈다. 우리가 같은 텐노라는 것을 알게 된 데에서 갑자기 유대감이라고 생긴 것인지, 서로 싸우지도 않았다. 오랜 실험이 끝나고 돌아오면 간단하게 대화를 하기도 했다. 무슨 실험을 했는지, 여기서 나가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텐노들이 언제 구하러 올 지. 그것은 의외로 큰 버팀목이 되었다.

 

그렇게 실험이 계속되던 어느 날 조용한 밤, 갑자기 문 밖에서 삑, 삐빅, 삑, 삐비빅, 하고 그들이 문을 열기 전 나던 소리가 났다. 우리는 갑자기 그들이 들이닥쳐 무엇을 할 지 몰라 바짝 긴장을 했다. 어쩌면 텐노들이 오기 전에 우리를 어딘가 더 깊숙한 곳으로 옮겨 영원히 찾지 못하도록 만들려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혹시, 정말로 다른 텐노들이 와준 것은 아닌지, 온갖 생각을 했다.

 

문이 열리고 모습을 보인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어둠 속으로 녹아들 것 같은 새까맣고 날렵한 몸을 가졌는데, 연구원이 텐노, 라며 뒤에서 걸어 나와 우리는 그가 텐노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들떴다. 크게 소리를 낼 뻔한 우리들을 향해 쉿, 하고 목소리를 낮추라고 한 그는, 곧 등을 보이고 우리를 향해 모두 따라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우리는 발소리를 죽이고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실험을 당하러 끌려 나오는 것이 아닌, 우리가 이 방에서 걸어나가는 것은 처음이라 벌써 마음만큼은 창문 너머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조용한 복도에 우리들의 발걸음 소리만 울렸다. 실험이 계속되는 동안 불빛과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기계는 모두 멈춰 있었다. 앞서가는 그는 한눈을 팔면 바로 사라질 것처럼 알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곧 그의 뒷모습에만 집중해서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계속 조용하게 비어있는 복도를 걸었다. 우리는 왜 아무도 보이지 않는지 궁금해했는데, 곧 그가 들어오는 길에 모두 처리했다고 대답해 우리는 납득하고 계속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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