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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는 들어오는 길에 시체를 어떻게 처리하며 들어왔길래 아무도 안 보이는가?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모조리 다 죽인 것인가?
항상 들리던 위이잉-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복도를 걷고 있으니 점점 불안함이 피어났다. 내 앞을 걷고 있는 둘에게 조용히 무언가 이상하지 않냐고 소근거렸다. 그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무슨 일이 생겨도 앞서가는 그가 도와줄 것이라며 조용히 따라가기나 하자고 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점점 불안감은 커져만 갔고, 나는 결국 더 이상 못 가겠다고, 무언가가 이상하다고 멈춰 섰다. 당연히 그 둘은 화를 내었다. 나는 너무나도 비어있는 복도를 보라며, 함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둘은 당연히 앞서가던 텐노가 도와주지 않겠냐며 돌아봤지만, 정작 그 텐노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당황했다. 둘은 내가 망설이느라 그를 놓친 걸지도 모른다고 화를 냈고, 함부로 목소리를 높이기도 위험하여 결국 앞으로 어떻게 할 지 말다툼을 시작했다. 둘은 어떻게든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어했고, 나는 다시 돌아가 기다리는 것이 더 안전하지 않겠냐고 했다. 둘은 내가 벌써 그들의 부하가 다 됐다며 나를 매도했다. 그렇게 옥신각신 하는 와중에 갑자기 밝은 빛이 우리를 비췄고,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우리를 향한 불빛에 우리는 잠시 시야를 잃었고, 다시 시야를 되찾았을 땐 이미 그들에게 둘러 쌓여 있었다. 곧 팔다리를 구속당해 둘은 결국 나 때문에 잡혔다며 소리를 질렀다. 다시 엄청난 죄책감이 밀려왔다. 나는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끌려가는 와중에 같이 잡힌 연구원이 그들의 언어로 무언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대화의 대부분은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것이 무슨 말인지 생각해볼 틈도 없이 곧 온 몸에 충격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항상 있던 그 방이었고, 그 방엔 나와 연구원밖에 없었다. 나머지 둘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하는 것은 일부러 밀어두었다.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곧 그들 중 하나가 들어와 나한테 나오라고 손짓했고, 나와보니 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훌륭하다고, 축하한다고 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아니, 모르고 싶었다. 시야의 가장자리에 보이는 탁자 위에 올려진 익숙한 팔다리와 갈라진 머리가 무슨 의미인지 외면하고 싶었다. 소장은 곧 부하들에게 무언가를 명령하더니 나를 향해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리고 총을 사용해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곧 작게 웃더니 이제부터 잘 배우면 된다고 했다. 곧 같이 있던 연구원이 다가왔다. 소장이 나의 손에 총을 쥐어주고, 손을 잡은 채로 연구원을 향해 겨눴다. 손이 떨렸다. 그 연구원은 가만히 총 끝을 보더니 나를 향해 꼭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손가락을 통해 딸깍, 하고 무언가 눌린 느낌이 전해졌다. 연구원이 쓰러졌다. 나는 곧 방으로 되돌려졌고, 한동안 아무도 날 찾지 않았다. 방에 혼자 남은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결국, 살아남은 건 나뿐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살아남는데 이 방에 있던 나 외의 모든 이들의 목숨이 희생되었다. 나 하나의 목숨에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그렇게 생각하니 점점 견디기 힘들어졌다. 그 와중에 연구원이 마지막으로 남긴, 내가 살았으면 좋겠다는 그 말만이 조금 힘이 되었고, 살고 싶다는 생각은 곧 살아야 한다,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이 방의 목숨을 모두 합치면, 지금 혼자 남은 내가 되는 것이고, 그리고, 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버틴 그 동안의 고통들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살아남았다. 그러므로 나는 살아야 한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절대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만들어 꿨던 꿈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왜 그랬는지, 어디서부터 후회해야 할 지도 몰랐다. 내가 들이마시고 있는 분자 하나까지, 나를 지금까지 살게 해준 것에 화가났다.
그렇게 꽤 긴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문이 열리고 나오라는 손짓을 받았다. 소장이 서있었다. 소장이 나에게 이제 마지막 테스트만 통과하면 완성된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그런 나를 본 소장은 곧 머리를 잡고 위로 잡아당겼다. 네모난 모양의 그것이 벗겨지더니 그 안에서 연구원과 닮은 얼굴이 나타났다. 그것을 옆의 탁자에 내려놓은 소장은 뒷짐을 지고 내 주위를 돌면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만약, 지금 소장의 뒤에 서있던 그들 중에 죽은 줄 알았던 연구원이 있다면?
우리가 워프레임 수트의 기능은 따라 하지 못해도 모양 정도는 흉내 낼 수 있는데, 만약 내가 본 텐노가 사실 가짜였다면? 구하러 왔던 텐노도, 나 때문에 죽은 줄 알았던 두 텐노도.
그 외의 다른 실험체들도 그렇게 연기를 한 것이라면? 아니면,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와서 정말로 실험 당하고 죽은, 아무 상관도 없는 생명이라면?
이 모든 게 나 하나를 위한 연극이었다면?
그가 하는 말을 실제로 상상해볼수록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느낀 죄책감과, 슬픔과, 모든 고통이 그들의 손에 놀아난 것이라면? 소장은 미동도 없이 서있는 나에게 그저 가정해보라고 했다. 그렇기에 소장의 말이 사실인지, 그냥 해보는 거짓말인지 알 수 없었다. 혹은 진실과 거짓이 섞여있을지도 모른다. 소장이 모두 거짓인건 아니라며, 무엇이 진짜일지 생각해보라며 웃었다.
몸 속 깊숙한 곳에서 끓어오르는 느낌이 올라왔다. 곧 그것은 목을 통과해 내가 기억하는 한 내가 내본 것 중 가장 감정적이고, 고통스러운 소리를 만들었다. 눈앞이 붉어졌다. 정말로 그들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소장이 자기 뒤로 서있던 다른 이들 사이로 뒷걸음질 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소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에게 총을 쏘거나, 막대기로 내려치며 공격했고, 그리고 그 위에 떠다니는 알 수 없는 빛나는 물체들이 그 길을 방해했다. 나는 천천히 움직이는 그것들을 닥치는 대로 부수며 소장을 향해 돌진했다. 정확히는 찢는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손에서 자라난 빛이 그것에 닿는 것을 갈라버리고 있었다.
그러나, 소장은 내가 이렇게 나올 것을 예상하고 준비했는지, 그들의 숫자는 줄어들질 않았고, 익숙하지 않은 힘을 지속시키는 것은 버거웠다. 점점 그들의 공격은 빠르고 강해졌고, 갑자기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공격을 하려 했지만, 몸에 흐르는 전류가 근육의 움직임을 짓눌렀고, 점점 서있기조차 힘들어졌다. 결국 바닥에 쓰러져버린 나를 내려다보며 소장은 손짓으로 공격을 멈췄고, 나에게 앞으로 자신의 말을 잘 듣는다면, 지금까지 겪은 그런 고통 없이 살게 해주겠다고 했다. 이 프로젝트에 얼마나 많은 자원이 들어갔는데, 살아남았으면 앞으로도 계속 살아야 보람이 있지 않냐며, 여기서 죽이긴 아깝다고 했다.
사실, 그의 말을 듣고 들었던 생각은 살고 싶다, 보다는 이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좌절감이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견뎠는지, 이제 그런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을 하려 했다.
그 순간,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주위가 웅성이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텐노! 텐노!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숨쉬는 것도 힘들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멀찍이서 철끼리 부딪히는 소리, 무언가 터지는 소리, 시끄러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점점 가까워졌다. 그러더니 곧 그 소리들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들렸고, 나의 몸은 갑자기 자유로워졌다. 나는 위를 올려다봤다. 검과 총을 든, 나와 비슷하게 생긴 이가 서있었다. 그 뒤로 터지는 폭발이 왠지 눈부신 빛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곧 쓰러진 소장의 머리에 칼을 내리꽂더니,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가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 나의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걸을 수 있냐고 묻길래 발을 내디디려 했지만 다리가 후들거려 서있기도 힘들었다. 그런 나를 보고 내 팔을 목 위로 감고 허리를 잡아 지탱해주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 걷다 보니 점점 몸에 힘이 돌아왔고, 나는 이제 잡아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럼 먼저 가서 길을 만들어놓고 있을 테니 잘 따라오라는 말을 남긴 뒤 빠르게 달려나갔고, 나는 그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마다 그들의 시체가 마구잡이로 뒹굴고 있었다. 나는 싸움의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따라 계속 걸었다.
거대한 문이 나왔다. 양쪽으로 열리는 그 문은 한쪽 문이 부숴져 있었다. 문을 통해 하늘이 보였다. 기묘한 감정이 들었다. 이제 여기를 벗어나면 유리를 통해 보는 것이 아닌, 아무것도 거치지 않은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문을 지나 바깥으로 나왔다. 강한 바람이 불었다.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도, 들리는 소리도 생소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뒤돌아 내가 있던 곳을 보았다. 검은 연기가 피어 오르고, 곳곳에 붉은 불꽃이 솟았다. 나는 앞서 달려가는 텐노들을 따라 달렸다. 그 동안 이렇게 달려본 적이 없어 참 기묘한 느낌이었다. 갑자기 강하게 움직여 근육이 아픈데도, 마치 붕붕 떠오르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텐노들은 넓고 둥근 원반 위에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까 소장을 향해 달려들 때와 다른 느낌의 무언가가 몸 안에서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코퍼스에게서 벗어난 것이다.
곧 몇몇 텐노들은 각자 비행선으로 보이는 물체에 타서 뿔뿔이 흩어졌고, 맨 처음 본 텐노만 남아 나에게 이름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갑자기 저 안쪽 깊숙한 곳에 파묻어놓은 기억도 같이 떠올랐다.
“발키르”
그는 작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왠지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