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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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시간은 하루도 빠짐없이 제 갈 길을 갔다. 지나간 꿈들이 간혹 제 눈앞을 스쳐 지나가듯 비췄지만, 멈춘 적도, 뒤로 되감아진 적도 없이 그렇게 흘러갔다. 우주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하루라는 시간개념은 자세히 느껴지진 않았지만, 인큐베이터 속의 알을 보고 있자니 흐르긴 하는 모양이었다. 알 껍질 너머로 느꼈던 작은 고동은 어느새 점점 커져 작은 북이 울리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워프레임의 도움을 받아 소매틱 링크에서 잠시 나와 알을 살피는 시간은 적게나마 느껴졌다. 나와도 되는지는 잘 몰랐지만, 로터스에게서 별다르게 말이 없었기 때문에 몰래 몰래 시간을 들여 나오곤 했다. 그렇게 얻은 작은 시간 속에서 아이는 인큐베이터의 투명한 벽면에 귀를 대고 있는 건 참 재밌게 느껴지기도 한다며 속으로 웃었다. 옆에서 무릎 꿇고 앉아있는 워프레임과, 닿지는 못해도 가까이서 살아있음을 알리는 소리는, 마음 한편 훌쩍이는 바람을 몰아내주었다. 더불어 알이 부화할까봐 노심초사해 하는 오디스의 투덜거림도, 봄날 한 철의 새침한 바람과도 같아 웃음이 나오게 했다.
시간이 흐르더이다. 마지막을 염두에 둔 가을의 따뜻한 햇살같이 부드러이.
[저기, 오퍼레이터, 슬슬 시간을 확인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오, 오, 오디스는 절대 그 단백지- 지직- 생명체를 걱정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오디스의 말에 번뜩 눈이 뜨인다. 아이는 새삼 인큐베이터에서 부화할 알의 잔여시간을 확인해볼 생각을 해보질 못했단 게 떠올라 머쓱해졌다. 제 대신 워프레임으로 인큐베이터에 다가가 살펴본다. 다가서서 버튼을 꾹 누르니 남은 시간들이 일, 시, 분으로 나뉘어 숫자로 표기돼 떠올랐다. 이제 몇 시간, 12시간을 조금 더 넘게 기다려야하는 시간. 예상 부화시간을 계산해본다. 오늘은 지구시간으로 12월 23일, 늦은 저녁시간. 그렇다면 부화 날은 24일 오후 일찍이 쯤에.
괜스레 흐늘흐늘 웃음이 걸렸다. 열리는 문에 별빛이 튀어 돌아오던 워프레임을 치고 푸스스 바닥으로 떨어졌다. 밟으면 파삭거리는 깨지는 소리가 들릴 것처럼. 다가오는 기쁨에 워프레임을 담은 눈 속에 작은 오색 불꽃폭죽이 퍽퍽 터졌다.
낭창한 가지가 휘어지고, 제 몸을 털어 낙엽을 우수수 떨군 것도 꽤나 오래전날의 일로, 지구는 하나 둘 나뭇잎 옷을 벗어냈다. 텅 빈 하늘 아래로 빽빽이 드러난 나무들이, 지구가 가시 옷을 입은 것 마냥 보이게 했지만, 추워보이진 않았다. 낙엽을 덜 떨군 나무 아래에서 해치운 그리니어의 숫자를 손가락을 동원해 하나 둘 꼽아 새어보고 있자니, 휑하니 불어온 새된 바람에 철썩 철썩 워프레임의 위를 때리며 낙엽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덕분에 숫자를 까먹어버려 아이는 워프레임의 손가락을 쭉 피고 낙엽 앉은 헬멧이나 털어내잔 심정으로 손을 들었다. 또 다시 바람이 휙휙 불었다. 찬기 가득한 세찬 바람이 낙엽뭉치를 한가득 워프레임에 퍼부었다. 입이 있었다면 침을 여러 번 뱉고 헛기침을 해도 모자랄 일이었다. 그럴 일 대신, 워프레임 틈새 사이사이 마다 낙엽들이 끼어버린 것 또한 그와 비교 해봐도 모자르지 않다고 아이는 생각했다. 낀 낙엽들이 다 빠지기도 전에 부서질 새라 줄기의 꼬랑지를 잡는 손이 파르르 떨렸다.
어찌저찌 보이는 낙엽들을 빼버리곤 남은 그리니어 병사들이 있는지 기지를 둘러본다. 꽤나 헷갈리는 길도 있어 자세히 살피며 다른 길로 새지 않도록 조심했다. 확인이 끝나고 도착지를 향하여 가는 길, 낙엽 밟는 바삭한 소리가 흥겹기만 하다.
리셋으로 들어오자마자 오디스가 인사를 건네었다. 가벼운 인사 뒤엔, 워프레임 뒤에 무얼 그렇게 주렁주렁 달고 오셨나요? 새로운 치장인가요, 오퍼레이터? 하고 말하였다. 새삼 제 자신이 보인 곳만 낙엽을 떼어냈단 사실이 기억났다. 워프레임을 움직여 폴짝폴짝 뛰어도 보고, 빙글빙글 돌기도 해보며 낙엽을 털어냈다. 우수수 떨어진 얼마 되지 않은 낙엽들에 어떡하지, 하고 고민하던 찰나,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건지 조심조심 낙엽을 주워 모았다. 낙엽을 다 끌어 모은 이후, 낙엽을 놓을 장소를 물색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지구시간 12월 24일. 임무를 떠나기 직전에 알을 깨고 태어나, 인큐베이터 속 고롱고롱 잠들어 있을 아기 쿠브로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