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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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들려오는 가련한 작은 종의 울림소리.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섞여 들리었고, 메아리 같은 누군가의 목소리들이 튕겨져 나오며 춤추었다. 흐릿한 시야의 너머로 분주히 움직이는, 어른들로 보이는 커다란 자들과, 그 근처를 맴도는 또래 아이들. 너도나도 손에 무언가를 손에 쥐고, 기억하기 힘든 먼 옛날의 합창을 부르며 서로 앞장서겠다고 투닥투닥. 시도 때도 없이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싸우기 바빴던 어떤 아이들도 쭈뼛쭈뼛 천장 까마득히 높다란 것에 다가선다. 각자의 손에 들린 크고 작은, 모습도 가지각색인 장식물들이 제 몸들을 널어줄 끈에 매달려 가느다란 가지에 가벼이, 혹은 묵직이 걸리었다. 아아, 얼마나, 이다지도 평화로운지. 어린, 어렸던 수년 전의 나날. 안개 낀 세상마냥 흐리고 뿌연 기억.
제 손을 내려다본다. 조막만한 작은 손. 모아져 내밀어진 그 두 손을 바라보고 있자니, 흰 실험 가운을 입은 어른이 무언 갈 가벼이 올려준다. 손안, 포근히 내려온 까슬한 물체. 뽀얗고 둥근 두 개의 구체가 맞붙어져 발간 천 조각, 까맣고 매끈한 단추들로 꾸며져 있는.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까슬한 감촉이 썩 좋지만은 않아 보고만 있었던 기억. 삐빅, 삐빅, 띠리릭. 익숙한 기계음이 들리었다. 고장 난 캠코더의 액정처럼 조각나기 시작한 화면 속에서, 손을 뻗었다. 손가락에 건 가느다란 끈을 나뭇가지 위로 넘기려 했었던 듯, 까치발이 들리고, 몸을 쭉 뻗었다. 조각난 시야가 자잘하게 나뉘더니, 검은 조각들을 흩뿌리며 끊겨버린다. 그 뒤로, 장식물을 걸었는지는 볼 수가 없었다.
눈을 뜬다. 잠에 취했던 눈이 주위를 빙글빙글 둘러보다 앞을 바라본다. 고요하기만한 리셋의 풍경에 녹아든 한 워프레임. 소매틱 링크로부터 뻗어 나온 검은 그림자에 몸을 묻어 제 색을 가리었다. 사이로 새어나오는 에너지의 빛색깔이 파르라니 그림자 속의 별빛처럼 빛이 났다. 몸 주위를 일렁이는 에너지의 흐름마저 조용하다. 생명체라 부르기 어려운 것과, 사람이나 어른이 되지 않은 아이 사이에 흐르는 것은 그저 침묵 뿐이렸다. 하늘거리는 선명하리만치 허연 옷자락의 향연들이 옆에서 사부작거리는 착각이 들 정도로의, 깊은 침묵의 바다. 더 이상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워프레임과 아이, 제 자신이 마주 보고 있을 뿐인, 심연의 우주 속. 오디스 조차 조용하고, 숨소리 하나 쥐죽은 듯 잠잠하여, 어느새 스르륵 수면의 수렁으로 다시 빠져들고야 마는 것이었다. 눈 감기 전, 감아 들어가는 시야의 가느다란 선 속에, 거짓이라 부르기 힘든 두 번째의 자신이 보여 숨을 내뱉었다.
노래가 들리었다. 흔한 장식용 종에서 볼 수 있는 노란색처럼 밝고 경쾌한 리듬이었다. 무슨 기억이었던 것인지 몰라 떨떠름하게 서서 듣고 있자니 누군가 제 손을 잡아 이끌었다. 어른인가, 아이인가. 말을 건네 오는 목소리가 동굴 속에서 들리는 여러 물방울들이 떨어지는 소리 같이 울려대어, 잘 들리지 않았다. 아아, 주위로 다른 아이들이 뛰어간다. 저들끼리 재잘대는 눈꽃 핀 웃음들이 들려온다. 말소리에 오색찬란한 선율들이 홀을 울리는 노래에 실려 넘실댄다. 얼마를 갔는지 모르겠다. 점점 느려지는 발걸음이 뚝 멈춰서더니 잡고 있던 손목을 놓았다. 따스한 손이 떨어진다. 흐리멍텅한 아지랑이의 옆모습을 보다가 올려다보는 시선을 따라간다. 얼마나 높은지 시선을 따라 올라가는 것도 오래 걸린다. 아, 하고 자그만 탄성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었을 때에, 팍 하고 터지듯 꺼지는 홀의 조명들. 귀에 이명이라도 들리는 듯하고, 웅성대는 아이들의 목소리만 소곤소곤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마냥 싱그러이 울린다. 아주 잠깐, 어두움에 숨어들었던 시간이, 하나 둘 조명 장식의 손톱만한 전구들에 불이 켜지며 별에서 떨어진 별가루들 마냥 반짝인다. 여기저기서 호기심어린 탄성들이 들려온다. 눈을 떼지 못하여 귀로 듣길 그리 들었다. 장식물들에 다채로운 빛들이 부딪혀 가루되어 다른 장식물들에 떨어지길 반복하였다. 기억하길, 아이는 제 자신이 아마, 뒤편에서 들리는 소리들에도, 오랫동안 그 자리서 벗어나질 못하고 내내 구경했던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흐트러지는 리본들의 색색들에 쌓여 눈이 감기었다. 꿈에서 감긴 눈은 두 번째 눈꺼풀에 감기어 암흑 속으로 풍덩 잠겨들었다. 오디스가 부르는 소리가 언뜻 푸르게 들리었다.